「칼럼」인간 존엄의 관점에서 바라본 시각장애
최종 수정일: 8월 2일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세상을 바라보고 이해하며, 사람들과 관계를 맺는다. 인간은 눈, 귀, 코, 혀, 피부와 같은 다양한 감각기관을 통해 주변 환경을 인식하여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다른 사람과 소통한다. 특히 시각은 외부 세계의 정보를 빠르게 받아들이는 중요한 감각으로 여겨져 왔다. 예로부터 한국 사회에는 “몸이 천 냥이면 눈이 구백 냥”, “눈이 보배”라는 속담이 있을 만큼 시각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이러한 표현은 시각이 인간의 삶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보여 준다. 그러나 인간은 감각 기능만으로 설명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감각은 세상을 경험하는 중요한 통로이다.그럼에도 인간은 감각에 머무르지 않는다. 인간은 생각하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삶의 의미를 발견하고 자신의 가능성을 실현해 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한 사람을 이해할 때에는 감각 능력이나 신체 기능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 자체를 함께 바라보아야 한다.
현대 인권 철학은 모든 인간이 존재 자체로 존엄한 가치를 지닌다고 설명한다. 이 인간 존엄의 원칙은 현대 인권 철학에서도 핵심 전제가 되었다. 이러한 원칙은 「세계인권선언」 제 1조에서도 모든 인간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롭고 존엄과 권리에 있어 평등하다고 선언함으로써 확인된다. 그러나 인간 존엄을 선언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인간 존엄이 선언되었다고 해서 현실에서 모든 사람이 존엄하게 대우받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간극은 사람들이 서로를 이해하고 평가하는 사회적 규범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다시 묻게 한다.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는 정상과 비정상을 구분하는 기준이 자연스럽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는 이러한 기준이 근대 사회에서 권력과 지식이 작동하는 규율 제도를 통해 역사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분석하였다. 그는 권력과 지식이 작동하는 규율 제도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비교하며 분류하고, 사람들은 그러한 정상성의 기준에 따라 이해되고 평가된다고 설명하였다. 이와 같은 설명은 사람들이 타인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자연스럽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규범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실제로 우리는 종종 한 사람의 내면과 삶 전체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외적으로 드러나는 모습만으로 그를 판단한다. 외모와 신체 조건, 장애와 같은 눈에 보이는 요소가 사람의 가치를 결정하는 기준처럼 여겨질 때가 있다. 또한 능력과 성과처럼 사회적으로 평가되는 요소가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기도 한다. 나아가 집과 자동차, 복장과 장신구와 같은 사회적 표지 역시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이 타인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기준이 자연스럽거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규범일 수 있음을 보여 준다. 푸코의 분석은 우리가 사람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기준 역시 자연스럽거나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적·사회적 과정 속에서 형성된 규범임을 비판적으로 성찰하도록 한다.
그러나 기존의 규범이 역사적·사회적으로 형성되었다는 사실을 밝히는 것만으로는 사회가 따라야 할 새로운 규범의 정당성이 곧바로 제시되는 것은 아니다. 푸코의 분석은 새로운 규범의 정당성을 직접 제시하기보다, 어떠한 규범이 정당한가라는 철학적 질문을 새롭게 제기하도록 만든다. 다시 말해, 사람을 이해하고 평가하는 기존 기준이 권력과 규율의 산물이라면, 이후의 과제는 어떠한 기준이 사회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는 규범이 권력과 지식의 작동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된다는 설명만으로는 규범의 정당성을 충분히 설명할 수 없다고 보고, 담론윤리를 통해 모든 이해당사자가 수용할 수 있는 규범의 정당성 기준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인간의 존엄은 개인의 능력이나 신체적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동등한 가치를 지닌 존재라는 데에 근거한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존재 자체로 동등한 존엄을 지니며, 서로를 동등한 사람으로 존중하고 사회의 모든 영역에 함께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이에 대해 하버마스는 사회적 규범은 단순히 역사적·사회적 산물이라는 사실만으로는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으며, 이해당사자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실천적 담론을 통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형성된 규범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은 사람을 바라보는 새로운 기준을 요구한다.
그러나 절차적으로 정당한 규범이 마련되더라도 그것이 개인의 삶 속에서 어떻게 경험되고 실현되는지는 또 다른 과제로 남는다. 한편 독일의 사회철학자 악셀 호네트는 하버마스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계승하면서, 상호 인정이 개인의 긍정적 자기관계를 형성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 조건임을 강조하였다. 호네트는 인간이 사랑과 권리, 사회적 연대 속에서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때 자신감, 자기존중, 자아존중감을 형성하며, 이러한 상호 인정이 정의로운 사회의 핵심이라고 보았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의 권리를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누구나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으며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논의는 서로 다른 문제의식과 방법을 지니지만, 사람을 능력이나 신체 조건만으로 이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대 인권철학의 중요한 철학적 자원을 제공한다. 인간 존재에 주목하는 관점은 사람을 능력이나 신체 조건이 아니라 존재 자체의 가치에 근거하여 이해하도록 함으로써,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를 근본적으로 전환한다. 반면 사람을 능력이나 장애와 같은 외적인 조건으로 평가하는 사회에서는 인간 존엄이 실제 삶 속에서 구현되지 못한 채 추상적인 원칙에 머물기 쉽다. 반대로 서로를 동등한 시민으로 인정하는 사회에서는 존엄이 실제 삶 속에서 참여와 관계를 통해 구현된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는 역량을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으며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 상호 인정은 인간 존엄이 사회적 관계 속에서 실현되는 과정을 설명하지만, 이러한 존엄을 실제 사회제도와 정책 속에서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는 여전히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사람을 외적인 조건이나 사회적으로 형성된 규범만으로 평가하는 시선은 한 사람의 삶과 가능성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게 만든다. 한 사람을 외적인 조건만으로 판단하는 일은 한 권의 책을 끝내 펼쳐 보지도 않은 채 표지만으로 그 가치를 단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을 바라보는 기준은 외적인 조건에서 존재 자체의 가치를 중심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단순한 인정을 넘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실제로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이 마련되어야 한다. 그것이 실제 삶 속에서 어떻게 보장될 것인가가 중요한 과제로 남는다. 이러한 과제를 구체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대표적인 이론 가운데 하나가 역량접근이다. 이러한 관점을 발전시키는 데 크게 기여한 인물로는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과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있다. 두 사람은 인간의 삶을 이미 이루어진 성취가 아니라, 각자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역량을 기준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말하는 역량은 단순한 능력이 아니라, 각자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실제로 선택하고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를 의미한다. 따라서 정의로운 사회는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접근 가능한 물리적·디지털 환경과 사회적·제도적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이러한 이유로 역량접근은 사회를 이미 이루어진 성취나 경제적 성과만으로 평가하지 않고, 모든 사람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실질적인 자유와 기회가 얼마나 보장되는가를 기준으로 사회의 정의를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센은 인간이 스스로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선택하고 형성할 수 있는 실질적 자유뿐 아니라, 자신의 삶과 사회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행위주체성을 함께 강조하였으며, 누스바움은 이러한 자유가 모든 사람의 인간 존엄을 실현하기 위한 기본 역량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역량접근은 인간의 삶을 평가하는 규범적 기준일 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로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적 조건을 마련해야 함을 요구하는 정의의 관점으로 이해될 수 있다. 나아가 역량접근은 사회를 평가하기 위한 기준일 뿐 아니라, 인간의 존엄이 실제 삶 속에서 얼마나 보장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규범적 관점이 된다. 이러한 이해는 모든 사람이 인간으로서 존엄한 존재이므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실현하는 데 필요한 역량을 보장받아야 함을 보여 준다. 지금까지 살펴본 논의는 모두 사람을 능력이나 정상성의 기준으로 평가하는 관점에서 벗어나 인간 존엄을 중심으로 이해하려는 공통된 방향을 지닌다.
이러한 철학적 논의는 장애를 이해하는 방식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특히 시각장애는 인간의 가치를 보여주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인간을 어떠한 존재로 이해하고 존중하는지를 드러내는 사례로 해석될 수 있으며, 이러한 점에서 역량접근은 시각장애를 인간 존엄의 관점에서 재구성하는 이론적 토대를 제공한다. 앞서 살펴본 논의는 장애를 바라보는 이해 방식에도 새로운 전환을 요구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장애 역시 인간의 존엄을 결정하는 기준이 아니라, 인간이 살아가는 다양한 삶의 조건 가운데 하나로 이해되어야 한다. 특히 시각장애는 시각 기능에 제약이 있는 상태를 의미할 뿐, 인간의 존엄이나 가치 자체를 감소시키지 않는다. 이 때 중요한 점은 시각장애인을 보호나 동정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는 동등한 사회 구성원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필요한 지원은 당사자를 대신하여 결정하거나 보호하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실현할 수 있도록 돕는 데 그 의미가 있다. 실제로 시각장애인들은 학문, 예술, 음악, 교육,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며 사회에 기여하고 있다. 음악 분야에서는 가수 이용복이 오랫동안 대중음악을 통해 사람들에게 감동을 전해 왔으며, 재즈 하모니카 연주자 전제덕은 국내외에서 뛰어난 음악성을 인정받고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지선과 피아니스트 김예지 역시 꾸준한 연주 활동을 통해 전문 연주자로서 자신의 역량을 펼치고 있다. 교육 분야에서는 교육 현장에서 활동하는 최유림이 시각장애인 영어교사로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전문성을 발휘하고 있다. 스포츠 분야에서도 시각장애 선수들은 패럴림픽과 장애인아시아경기대회의 유도, 육상, 골볼, 수영 등 다양한 종목에서 꾸준히 우수한 성과를 거두고 있으며, 국내에서는 쇼다운, 볼링, 한궁, 탁구, 슐런을 비롯한 생활체육 활동을 통해 자신의 역량을 펼치며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적절한 사회적 조건과 지원이 마련될 경우 시각장애인도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역량을 실현할 수 있다는 역량접근의 관점을 현실 속에서 보여 준다.
또한 장애는 개인의 손상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환경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된다는 사회적 모델에서도 이러한 관점이 강조된다. 물리적 환경뿐 아니라 정보통신과 디지털 환경을 포함한 접근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고 사회적 장벽이 제거될수록 장애로 인한 제약은 줄어들며, 모든 사람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사회에 동등하게 참여할 수 있다. 결국 장애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사회와 함께 해결해야 할 과제이며, 인간 존엄은 이러한 환경 속에서 더욱 온전히 실현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하면, 푸코는 사회적 규범과 정상성의 기준이 권력과 지식의 작동 속에서 역사적으로 형성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그의 분석은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규범 자체를 성찰하도록 이끈다. 반면 하버마스는 사회적 규범의 정당성이 모든 이해당사자가 자유롭고 평등하게 참여하는 담론을 통해 확보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을 계승하면서도 상호 인정의 차원에서 사회정의를 재구성한 호네트는 사람이 사랑과 권리, 사회적 연대를 통해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을 때 정의로운 공동체가 성립한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센은 사람들이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실질적으로 선택하고 형성할 수 있는 자유와 행위주체성을 강조하였으며, 누스바움은 이러한 자유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국가가 모든 사람에게 인간다운 삶을 위한 핵심 역량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처럼 이들의 이론은 서로 다른 문제의식과 방법론을 지니지만, 능력이나 정상성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관점을 비판하고 인간을 보다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데 중요한 철학적 자원을 제공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시각장애는 개인의 결함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라, 우리 사회가 인간을 어떠한 존재로 이해하고 존중하는지를 비추는 거울이며, 동시에 인간 존엄이 제도와 관계 속에서 얼마나 구현되고 있는지를 가늠하게 하는 사회철학적 기준이다. 이러한 이해는 결국 인간은 감각 능력이나 생산성으로 평가되는 존재가 아니라, 존재 자체로 존엄한 가치를 지닌 존재임을 보여 준다. 시각장애를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장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장애를 어떻게 이해하는가는 결국 인간을 어떻게 이해하는가를 보여 주는 기준이 된다. 따라서 인간 존엄의 관점에서 시각장애를 이해한다는 것은 시각장애를 새롭게 정의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사회가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을 인간 존엄을 중심으로 새롭게 성찰하고 재구성하는 일이다. 나아가, 이 재구성은 정의로운 사회를 새롭게 이해하도록 이끈다.
정의로운 사회란 인간 존엄을 사회의 기본 원리로 삼아, 모든 사람이 서로의 다양한 삶의 조건을 존중받으며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는 사회이다. 또한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사회에 참여하며, 자신이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을 실현할 수 있는 조건을 함께 보장하는 사회이다. 이러한 변화 위에서 비로소 모든 사람이 존엄한 존재로 인정받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며,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인간 존엄은 멀리 있는 이상이 아니다. 선언만으로 완성되는 가치도 아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과 함께 내딛는 작은 걸음에서 날마다 살아난다. 시각장애인과 함께하는 변화는 누군가를 위한 배려에 머물지 않는다. 우리 모두를 더욱 인간답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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